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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김남주「사라지는 번역자들」말의 봇짐을 운반하는 사람들.

               

이미지 출처 : 알라딘

 

책을 읽는 사람에게는 현실과 평행하는 또 하나의 세계가 존재한다.

 

 

책의 제일 첫 장에 적혀있는 말이다. 작가가 번역자들과 만난 프랑스 아를이 또 하나의 세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책의 챕터가 아를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에피소드 형식으로 진행된다. 작가님의 역량인지 다 읽은 후 챕터만 보고도 일화와 사람들이 이미지가 매우 뚜렷하게 기억난다.  

 

번역에 대한 고민, 언어에 대한 고민, 번역가들이 번역하면서 느꼈던 모든 것.

여러 나라의 언어들을 번역해서 책을 출판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의미있고 대단한 일이다. 인기가 있을지 없을지를 떠나서 책이 좋아서 시간을 투자해 모국어로 번역한다는 게 어떻게 보면 오타쿠의 기질이 보이기도 한다. 특히 장기간으로 들어가는 작업은 초반의 열정이 사라질수도 있는데 완결까지 낸다는 게 사명감이 아니면 하기 어렵다.

세상은 넓고 읽은 책은 많다. 책을 내는 작가들과 번역가들의 부지런한 노력 덕분에 해외에서 읽지 못한 문학작품들을 읽게 됐다. 덕분에 새 작가들을 알게 됐으니 좋은 일이 아닌가.

품고 있는 침묵의 저변이 아주 넓은, 그 깊이가 아주 깊은 문장. 그럴 때면 그저 가만히 들여다보는 수밖에 없다. 때로는 소리 내어 읽기도 한다. 그러고는 내버려둔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들여다본다. 그러다보면 온다, 그 순간이. 길을 걷다가 밥을 먹다가 샤워를 하다가 80분의 요가를 마치고 온몸의 긴장을 풀고 시체처럼 누운 사바사나의 시간에  홀연히 내려앉는다. 그 침묵의 의미가, 아니 침묵까지 포괄하는 그 문장의 의미가. 154p

하나의 짧은 문장은 문학적 함축일 수도 있고 단순한 생략일 수도 있다. 행간의 뜻을 풀어내 오해의 소지를 없애보겠다고 그 단순한 문장에 수식어를 덧붙이는 것은 좋은 번역에 대한 오해다. 애매한 표현이니 명확하게 해야겠다고 어둠 속에 묻힌 단어의 아우라를 갈기갈기 해부하는 건 독자를 바보 취급하는 것이다. 담담하고 당당하게 읽으며 그냥 느끼는 독자의 능력을 믿는 수밖에. (중략) 독자 역시 언어의 비의와 함축을 누릴 줄 알고 누릴 권리가 있다. 낱낱이 자르고 토막 내어 은밀한 시적 환기력을 잃어버린 비루한 산문을 생산하길 원하는가. 16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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