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남주「사라지는 번역자들」말의 봇짐을 운반하는 사람들. 이미지 출처 : 알라딘 책을 읽는 사람에게는 현실과 평행하는 또 하나의 세계가 존재한다. 책의 제일 첫 장에 적혀있는 말이다. 작가가 번역자들과 만난 프랑스 아를이 또 하나의 세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책의 챕터가 아를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에피소드 형식으로 진행된다. 작가님의 역량인지 다 읽은 후 챕터만 보고도 일화와 사람들이 이미지가 매우 뚜렷하게 기억난다. 번역에 대한 고민, 언어에 대한 고민, 번역가들이 번역하면서 느꼈던 모든 것. 여러 나라의 언어들을 번역해서 책을 출판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의미있고 대단한 일이다. 인기가 있을지 없을지를 떠나서 책이 좋아서 시간을 투자해 모국어로 번역한다는 게 어떻게 보면 오타쿠의 기질이 보이기도 한다. 특히 장기간으로 들어가는 작업은 초반의 열정이 사라질수도 있..
김남주「나의 프랑스식 서재」 번역자의 서재에 속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유리창 같은 것은 없다. 흐릿한 연기와 먼지와 때로 얼룩진 내 서재는 파리의 습한 아침과 남프랑스의 부드러운 바다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지만, 이국어가 담고 있는 풍요를 잡으려는 시도는 삶이 죽음으로 끝나듯 실패가 예정된 작업인지도 모른다. 다만 얼마나 제대로, 기분 좋게, 아름답게 실패할 수 있을까. 갈고 닦고 문질러서 넋이며 그리움이 잘 보이는 거울 하나를 만들 수 있을까. 머릿속의 모국어가 모두 빠져나간, 탈고 후의 서재에서 건져낸 이 글들이 없었다면 나는 유려한 앵무새의 사촌으로 살았을 것이다. 황량하고 충혈된, 그렇지만 깨치고 나아와 거울 앞에 선 나의 말. 열차에서 추리소설을 읽는 여행자는 하나의 불안에 의지해 다른 불안을 일시적으로 억압한다. 여..
이다혜「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여행으로 뭘 배운다는 게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는 일인 경우도 있는 것이다. 기껏 제자리에 돌아오려고 어딘가로 떠나는 일, 같은 자리에 있기로 했다고 해서 그 전과 같은 사람일 수는 없는 법이다. -무조건 다른 사람과 여행을 하는 해 중- 내가 다녀 온 곳을 다른 사람이 다녀왔는데, 찍어온 사진이 다를 때의 즐거움도 쏠쏠하다. 같은 곳을 간다고 같은 것을 보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게 묻어나는 사진이 좋다. 심지어 같이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 다른 사진을 찍어온 것을 보고 "이런 거 언제 봤어!"할 때도 있다. -다르다는 말의 뜻 중- 나는 얼마든지 다른 장소에 갈 수는 있지만 다른 사람이 되어볼 수는 없다. 아마도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할 때 발견이 가능하다면, 그가 나와 다른 눈을 가지고 있어서이리라.- ..
이다혜「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일주일 넘게 한 책만 붙잡고 읽었다. 쉬엄쉬엄 읽었고 책을 다시 읽는 습관의 작은 성공의 스타트다. 이 책을 읽게 된 배경에는 좋아하는 블로거 분의 공감, 여행이라는 단어의 반짝임, 곧 떠나야하는 미래 등등이 합쳐졌다. 재밌었던 부분은 내가 사랑한 패키지, 비여자 비남자, 다르다는 말의 뜻, 할지 말지는 해 봐야 안다 이 네 가지다. 나머지 글들도 재밌었지만 특히 공감이 많이 가서 기억에 남았다. 적요함, 물, 바람. 그 세 가지의 소리가 숲 속에 안긴 절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발은 여전히 시렸다. 그리고 그곳은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 진눈깨비가 우산 위에 떨어지는 소리, 흙바닥에 닿는 소리, 나뭇가지를 타고 흐르는 소리, 지붕을 두들기는 소리 한가운데 나 혼자 서 있었다.(…‥) 사위가 어..